[시청각장애인의 현실 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곱셈'의 장애를 아십니까

시청각장애인, 정부 규정한 15개 유형 장애에 해당되지 않아 지원 전무했던 상황
일부 개정령 통과됐지만 구체적 지원, 복지제도 확립 안돼 갈 길 멀어

윤정은 기자 승인 2020.01.21 01:55 | 최종 수정 2020.03.26 13:44 의견 0

장애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장애가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청각 장애인도 두 가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듯 두 가지 이상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복지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시청각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상 15개 장애 유형 가운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행히 지난 10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단독법인 헬렌컬러법(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른바 헬렌켈러로 불리는 시청각장애인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차단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다 체계적인 법과 제도 수립이 왜 필요한지, 세상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사진=시청각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 '달팽이의 별' 예고 영상 캡처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지칭하는 시·청각 장애인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각, 청각 장애인들의 복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나 언론 보도조차도 각각의 장애를 붙여 시청각장애로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과 청각 모두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들을 뜻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청각장애인이란 용어를 시각장애인, 청각 장애인을 아우르는 데 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뜻부터 짚는가 하면 세상의 통념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청각장애라고 하면 시각장애, 혹은 청각장애를 생각한다. 그러나 시청각장애는 완연히 다르다. 이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탓에 복지를 부르짖고 있는 세상조차도 시청각장애인의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TV다. 청각 장애인들은 장면을 해석해주고 등장인물들의 발언을 해설해주는 자막을 통해 세상을 접한다. 시각 장애인들은 볼 수 없기에 음성 지원이라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면? 자막해설이나 음성지원은 시청각장애인들에게 무용지물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데 대화는 어떻게 할까. 지난 2012년 국내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이 시청각장애인들의 대화법을 보여준다. 비오는 날, 거실 한가운데서 부부는 손끝으로 대화를 한다. 오직 손으로 느껴야 하기에 시청각장애인들은 서로의 말을 70~80%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작은 단면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눈과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들에게도 이같은 현실은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내에는 이런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국가 정책이 전무한 상태였다. 장애복지법이 규정한 15개의 장애 유형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기 때문이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각각의 장애로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만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처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지원기관이나 복지를 받을 수도 없었다. 국내 장애인복지법상 등록된 등록장애인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두 가지 장애를 같이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주요 장애에 해당하는 복지서비스만 지원받을 수 있다. 때문에 시청각장애인들은 장애특성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청각장애 복지를 부르짖는 많은 이들이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겪는 1+1의 장애가 아니라 곱셉의 장애”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각장애인지원법 위한 국민서명 전달식(사진=밀알복지재단)


■ 이제야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작, 갈 길 멀다

다행히 지난 10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청각장애인 지원과 관련된 일부 내용이 담긴 장애인복지법개정령이 통과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장애인복지법 중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보조기구를 개발·보급해나가고, 의사소통 지원 전문인력을 양성·파견하겠다는 내용을 추가해 개정했다. 특히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 이들의 직업재활, 의사소통, 이동훈련, 심리상담, 문화활동 참여 등을 위해 전담기관을 설치·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간 대화나 이동에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시청각장애인들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에 괄목할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낸 이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국내서 운영되고 있는 손잡다, 손끝세, 손끝이라는 단체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밀알복지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1993년 설립돼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취약계층을 도와 온 밀알복지재단은 꾸준히 시청각장애인들의 복지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지원센터인 헬렌켈러센터를 설립하고 시청각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을 비롯해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봉사자 언어교육, 자립지원 등 권리증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시청각장애인법 통과를 위한 입법활동과 캠페인에 적극 앞장선 단체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이 시청각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사회통합 지원에 관한 단독법률안을 발의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봄과 여름 시청각장애인법 통과를 위한 ‘우리는 헬렌켈러가 될 수 없습니다’ 온라인 인식개선·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찾아가 헬렌켈러법 제정 촉구를 위한 1만 7775명의 시민서명을 전달한 것도 밀알복지재단이다. 다만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보다 폭넓고 탄탄한 제도가 기반이 될 수 있는 단독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장애인복지법에 포함되지 않고 단독으로 법 제정을 요구한 헬렌켈러 법(시청각장애인지원법)은 시청각장애인의 특성 및 복지 욕구에 적합한 지원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시청각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권리를 보호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다.

이에 대해 밀알복지재단 측 관계자는 “통과된 개정령만만으로도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기에 대단한 성과라고 본다. 그러나 시청각장애가 타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만큼  보편적 장애인복지법으로는 실질적 도움을 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 중증장애일수록 법이나 제도에서 제정해 세부적으로 규정해놓을 때 중증장애 특성에 맞는 세심한 케어가 이뤄질 수 있다.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단독법 제정을 통해 시청각장애인들을 세심히 케어하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주력했고 앞으로도 단독법 제정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사실 그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제도나 지원이 전무했던 상태이기에 개정령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 말할 수 있다. 대화를 하고 싶어도 통역사나 가르쳐줄 교육인력이 갖춰지지 않아 시청각장애인들은 세상을 접할 기회가 적었고, 움직이고 싶어도 여느 장애인들이 받는 이동수단 혜택조차 받지 못해 발이 묶였던 터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아직 국내 시청각장애인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조차 못한 상황에서 법이 개정됐다고 해서 얼마나 세심한 케어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청각장애인을 돕고자 나선 이들이 단독법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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