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의 현실 ②] 올해 법 일부만 개정…'헬렌켈러법'은 왜 필요한가

장애인복지법 내 일부개정과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법 차이 크다
정확한 시청각장애인 인구도 몰라, 교육 및 직업 가질 기회도 없어

윤정은 기자 승인 2019.12.13 12:56 의견 0

장애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장애가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청각 장애인도 두 가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듯 두 가지 이상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복지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시청각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상 15개 장애 유형 가운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행히 지난 10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단독법인 헬렌컬러법(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른바 헬렌켈러로 불리는 시청각장애인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차단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다 체계적인 법과 제도 수립이 왜 필요한지, 세상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사진=밀알복지재단


시청각장애인은 국내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 유형 15가지에 포함되지 않아 어떤 지원도,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10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령이 통과됐다고는 하나 이는 시청각장애인 복지를 위한 기틀 마련일 뿐 더욱 세세하고 구체적인 제도들로 꾸려진 단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단독법으로 발의됐지만 지난 11월 27일 끝내 통과되지 못한 시청각장애인지원법(헬렌켈러 법)은 시청각장애인의 필요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이들의 사회참여와 권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 전국에 몇 명 있는지도 모르는 시청각장애인, 교육 문제 커

지금까지 현실은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참담했고 가혹했다. 그간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전무했기에 시청각장애인들이 국내에 몇 명이나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까지의 장애인복지법상 시청각장애는 별도의 장애유형으로 포함되지 않았기에 실태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2017년 장애인개발원에서 전국 장애인 실태조사(2014)의 빅테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에 약 1만여 명의 시청각장애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없고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복지서비스도 한참 부족하거나 전무하다 보니 시청각장애인들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의사소통이 불가한 상황이 대부분이라 정보접근이 어렵고, 교육이나 취업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통역사와 활동지원사 등이 양성돼야 한다. 이는 개정령에는 포함됐지만 더욱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선 구체적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현재 시청각 장애인 통역사는 국내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수어통역사협회에서 시청각장애인 의사소통지원사 양성과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와 제주 헬렌켈러센터에서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인 ‘손잡다’에서 매주 1회 설리번(통역사) 양성과정을 운영 중에 있는 정도다.

직업은 둘째치고 교육을 받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는 시청각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는 학교가 없고, 특히나 선천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방법도 전무한 상태다. 이에 대해 헬렌켈러센터 홍유미 팀장은 밀알복지재단을 통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을 상황에 처해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외국은 시청각장애인에게 촉각을 활용하는 감각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전무하다. 이들을 시각, 청각 둘 중 하나로 나눠 맹아학교, 농아학교에 보내니 시청각 장애인은 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개정령만으로는 통역 및 교육자를 양성해 시청각장애인을 교육시키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장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밀알복지재단에 따르면 대부분 시청각장애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직업이 없어 자립하지 못한 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간다. 

사진=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 캠페인 '우리는 헬렌켈러가 될 수 없습니다'



■ 개정과 단독법, 어떻게 다른가

이처럼 복합적 이유로 적지 않은 이들이 시청각장애인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저렇다 부연보다는 개정령과 발의됐던 단독법안을 비교해보는 것이 더 빠르게 와닿는다. 10월 통과된 개정령과 이명수 의원이 발의했던 단독법 조항 몇가지만 비교해봐도 단독법을 주장하는 이유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장애인복지법 안에 속해 있다. 이중 제 22조 5항을 개정했는데 “시각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시각 및 청각 기능이 손상된 장애인을 말한다)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점자·음성도서, 점자정보·무지점자단말기 등 의사소통 보조기구를 개발·보급하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 지원 전문인력을 양성·파견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맥락은 같지만 단독법을 주장한 헬렌켈러법은 이를 더욱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단독법 조항 중 제3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2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교육, 이동권, 일상생활 지원 등 장애를 완화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와 조사를 지원하여야 하며, 시청각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으며 이후 조항에도 시청각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차별받는 등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권익 옹호에 필요한 지원을 실시하고, 국민이 시청각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 필요한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 이같은 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내용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 역시 5조에 의무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7조를 통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시청각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시청각장애인에게 접근이 용이한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통해 시청각장애인들이 세상에 고립되지 않도록 꼼꼼히 적어두고 있다.

즉, 개정령이 이런 방향으로 가자는 포괄적 문구라면 단독법은 예산, 인력,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음으로써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국민의식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의무까지 모두 담아내 사회와 법이 이들의 권리 증진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개정령을 시작으로 단독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에는 사람을 위한 법이 필요하고, 필요한 법은 있어야만 한다. 이미 헬렌켈러법을 도입한 국가들도 있다. 대표적 예로 미국의 경우 1968년 헬렌켈러법을 제정한 후 전국에 헬렌켈러센터를 설치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케어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통역 활동도우미 파견사업을 실시하고 헬렌켈러센터를 운영하는 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국가적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개정령이 통과된 만큼 점진적으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보다 폭넓고 구체적인 지원 제도들이 마련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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